
더뉴스인 주재영 기자 |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김낙년)이 조선 성리학 사상사의 결정적 논쟁이자 인간 본성과 도덕 실천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다룬 『호락논쟁(湖洛論爭)』(문석윤 지음)을 발간했다. 이 책은 사유와 문화의 뿌리를 탐구하기 위해 기획된 교양총서 <사유의 한국사> 시리즈의 네 번째 권으로, 한국 전통 철학의 정수를 담아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지적 성취, ‘호락논쟁’이란?
‘호락논쟁’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조선 성리학의 두 주요 학파인 호학(湖學)과 낙학(洛學) 사이에서 벌어진 이론 논쟁이다. 중심 논제는 인간의 마음(心)과 본성(性), 그리고 그것들이 기질과 맺는 관계였다. 충청도를 중심으로 한 호학은 기(氣)의 측면을 중시하며 본성과 마음의 이해에 있어 현실적 조건과 기질의 영향을 강조했다. 반면 서울 중심의 낙학은 리(理)의 보편성과 인간 본성의 선함을 강조하며 보다 이상주의적 시각을 견지했다.
호학은 개인적 편향(私)을 극복하기 위한 ‘극기(克己)’를 강조한 반면, 낙학은 인간 내면에 내재한 성인(聖人)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설파했다. 이러한 논쟁은 단순한 철학적 논변을 넘어 조선 후기 사대부의 자아 인식과 시대 인식을 반영하는 사상적 지형도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성리학 개념을 입체적으로 정리하고, 시대를 넘어선 의미를 제시
『호락논쟁』은 이 논쟁의 기원과 전개, 이론적 배경과 중심 개념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전통 문헌과 근대 연구사를 모두 아우른다. 책은 호락논쟁의 전개 과정을 ▲논쟁의 태동 ▲학파의 형성 ▲논쟁의 성립 ▲논쟁의 정리라는 4단계로 구분해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리(理), 기(氣), 심(心), 성(性), 성인(聖人) 등 성리학의 주요 개념들을 독립된 장으로 구성해 상세히 설명하며, 호학과 낙학이 주자학 내부의 이론적 긴장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조명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조선 성리학의 깊이 있는 철학적 지형과 사유 구조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호락논쟁이 단순한 사상적 논쟁에 그치지 않고, 당시 조선 사회의 정치·사회 구조와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철학, 도덕, 윤리라는 형이상학적 논의가 현실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통찰하며 현대 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던진다.
단일 주제, 일관된 시각 – 3년간 집필로 완성된 깊이 있는 연구
『호락논쟁』은 짧은 논문식 접근이 아닌, 한 명의 연구자가 주제를 깊이 있게 통찰하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집필됐다. 저자인 문석윤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유가 철학과 조선 성리학, 특히 호락논쟁 연구에 꾸준히 매진해온 학자다. 그는 박사 논문에서 호락논쟁의 성립 과정을 규명했고, 이후 『호락논쟁: 형성과 전개』(2006)를 통해 기존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신간에서는 기존 연구 성과를 집대성함과 동시에, 특정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포괄해 균형 잡힌 서술을 완성했다. 한국 철학의 정통적 면모와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동시에 아우르며, 전통 사상의 현대적 가치 재발견이라는 과제를 성실히 수행했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 “인간이란 무엇인가”
『호락논쟁』은 한국 철학과 사상, 조선 지성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념 설명과 배경 서술을 충실히 담았다. 각 장 말미에는 핵심 개념 정리도 수록돼 논쟁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은 조선 시대 철학자들의 논쟁을 통해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도덕적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근본 질문을 다시 성찰하게 하며, 전통 사유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담론임을 분명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