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뉴스인 주재영 기자 | 전라북도 군산에서 서쪽으로 약 72km, 망망한 서해 한가운데 고즈넉이 떠 있는 작은 섬, 어청도. 이 외딴섬에 우뚝 서 있는 등대 하나가 있다. 1912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세워진 어청도 등대는 단순한 항로 안내를 넘어서, 격동의 시대를 증언하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전략적 요충지 위의 이정표
어청도는 북쪽의 황해도 해역과 남쪽 전남 해역을 연결하는 해상 항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어청도 등대는 서해안의 주요 항구들을 오가는 선박들의 필수 경유지로, 군사 작전과 무역을 위한 관측 거점으로도 활용되었다. 특히 일본은 이곳에 등대를 세움으로써 자국의 대륙 침탈 야망을 위한 해상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단순한 등대를 넘어, 전략적 의도가 스며든 구조물이었던 셈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움, 건축미와 기능미의 조화
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등대는 높이 14m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위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는 단면 구조, 삼각형 돌출 지붕, 꽃봉오리 모양의 섬세한 장식까지—이 모든 요소가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어우러지며, 근대 건축미의 정수를 보여준다.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건축적 조형미를 지닌 이 등대는, 자연 풍광과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섬의 풍경 속에 녹아든다.
100년 전 기술이 살아 숨 쉬는 내부 구조
어청도 등대 내부로 들어서면, 금속 가공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조립식 나선형 철제 계단이 눈에 띈다. 또 외부 침입을 대비한 접이식 철제 바닥판은 등대가 단순한 등명 시설을 넘어서 군사적 방호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들은 일제강점기의 위기감과 식민지 통치 전략 속에서 등대가 지녔던 군사적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첨단의 기술, 중추식 등명기와 목재 덕트
어청도 등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중추식 등명기다. 수은 위에 등명기를 띄워 회전시키는 방식으로, 당시로선 최첨단 기술이었다. 이 방식은 회전 시 발생하는 마찰을 최소화해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했으며, 오늘날에도 그 기술적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 더불어 등명기와 연결된 목재 덕트 시스템의 잔존물은 초기 근대 등대 기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로 손꼽힌다.
역사를 품은 여행지,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어청도 등대
어청도 등대는 단순히 바다를 밝히는 구조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정치적 배경과 건축 양식, 기술적 성취가 집약된 복합 문화유산으로, 100년 넘게 거친 바람과 파도를 견디며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역사와 자연, 기술이 공존하는 이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